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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손을 약하게 하여

에스라 4:1-5, 24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우리는 저번시간에 포로가 되어 이방 땅에서 비참한 삶을 살게 된지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다백성들이 드디어 7월에 나팔절과 초막절을 지키고 매일의 상번제를 회복하면서 성전 재건을 위한 재료를 준비하는 장면을 보았고, B.C.5362월 성전 재건의 기초석을 놓으며 착공식을 거행하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고,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알고 있는 노인들은 감격의 눈물과 함께, 그 규모의 초라함에 또 한 번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오늘은 성전 재건 공사가 시작되면서 부딪히게 된 어려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4:1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여기 보시면 성전 재건공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들었다고 합니다. 유다와 베냐민이라고 표현한 것은 귀환자들의 대부분의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가 스3:3절을 강해하면서 확인했듯이 유다 백성의 귀환에 앞서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고 앗수르의 인구혼합정책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서 정착하게 된 많은 이방의 족속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 이방 민족들과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혼하여 순수혈통을 잃어버리고 태어난 자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로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북이스라엘 지경에서 살아가고 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들을 사마리아 사람들이라고 불렀는데, 사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이방인도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유다백성들의 포로 귀한으로 인해 긴장하게 되었고, 이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때부터 다리오 왕 때까지 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악한 짓을 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1절은 이들을 대적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과 대적관계가 되어버린 그 출발점을 보시죠.

 

4:2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이 구절을 보시면 귀환자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들의 대표자들이 스룹바벨과 족장들을 찾아 와서 성전 재건 공사를 돕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에살핫돈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의 왕으로서 산헤립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자입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간 것은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이스라엘 땅에 이방인을 이주시킨 것은 에살핫돈이 처음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에살핫돈에 의해 북이스라엘 땅에 와서 정착하게 되었을 때부터 하나님을 찾았고, 제사드려 왔으니 성전 재건 공사를 도울 수 있게 해 다라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귀한 생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족장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3절을 보시죠.

 

4:3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도 하나님께 제사해 왔다고 했지만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족장들은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면서 정확하게 구별시킵니다. 조금 너무한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17:24-41절을 읽어보시죠. 여기 보면 이방사람들이 이스라엘 지경으로 끌려와 정착해서 살아갈 때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몇 사람을 징계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사람 중에 제사장이었던 자를 보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제사하는 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도 섬긴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기들이 섬기던 신들도 함께 섬기면서 지금까지 혼합주의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여려 신들을 섬겨 오고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따라서 성전 재건을 돕겠다고 나선 이들의 제안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의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혼합주의적인 종교관과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는 제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제안을 분별하지 못하고 수락했다면 종교적으로는 재건 이후에 종교적 갈등이 발생할 것이고, 그들의 혼합주의적인 신앙에 또 물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적으로도 모든 주도권을 빼앗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너무나 잘한 것입니다. 고후6:14-16절에서도 보면 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족장들은 그들이 재건 공사를 도울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지혜롭게 말합니다.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는 것입니다. 고레스 왕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재건 공사를 하라고 명하시지 않고, 귀환자들에게 성전 재건을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의 힘으로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4-5‘4.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성전 재건 공사의 동참을 거절당한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제 본색을 드러내면서 성전 공사를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4절에는 그들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바로 유다 백성들의 능력을 저하시키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어서 재건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능력을 저하시키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 것일까요? 5절에서는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리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정부관리로서 식민지역에서 일어나는 행정이나 사법적인 일들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고 있던 자들로 보입니다. 이들에게 뇌물을 주어서 성전재건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결국 소망 중에 재건 공사를 하던 귀환자들의 마음을 낙심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이 과정 속에서 얼마나 낙심했던지 학1:2절을 보시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귀환자들은 이렇게 낙심하여 아직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닌가 보다고 하면서 결국은 영적으로 자포자기하면서 성전 재건을 포기하고 자기 성읍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을 짓고, 자기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일에만 집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4:24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24절을 보면 이렇게 성전 재건이 중단된 기간이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라고 합니다. 대략 14년간 중단 된 것입니다. 10:1-3절을 보면 1.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 2.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3.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 학자들은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다니엘의 슬픔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 되었다는 소식으로 인한 슬픔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14년간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 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을 때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들을 통하여 귀환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성전재건 공사가 다시 시작되도록 권면합니다. 그래서 결국 14년 만에 성전재건 공사가 시작되게 됩니다. 이 감격스러운 장면은 5장을 들어가면서 나눌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왜 스4:1-5절을 보고, 마지막 절인 24절을 본 것일까요? 6-23절의 내용이 연대기 적으로 혼란을 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살펴볼 것인데요. 6절은 아하수에로 왕때에 대적자들이 어떻게 귀환자들을 대적했는지에 대한 기록이고, 7-23절은 아닥사스다 왕 때에 대적자들이 어떻게 귀환자들을 대적했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나서 24절은 다리와 왕 때까지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연대기적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왕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고레스-캄비세스-다리오-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입니다. 6절의 아하수에로 왕과 7-23절의 아닥사스다 왕은 다리오 이후의 왕들입니다. 그리고 성전재건은 다리오 왕때 완성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하수에로 왕과 아닥사스다 왕 때의 방해는 다리오 왕때 완성된 성전 재건 공사에는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두 왕때에는 성전 재건의 방해가 아니라 성벽 재건의 방해였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아하수에로 왕 때와 아닥사스다 왕 때의 방해가 다리오 왕 때까지의 성전 재건 공사 방해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6-23절을 건너뛰고 살펴 본 것입니다.

 

그러면 왜 고레스 때부터 다리오 왕 때까지의 성전 재건의 방해에 대한 기록 안에 이후의 왕인 아하수에로 왕과 아닥사스다 왕때의 기록까지 삽입해 놓은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대적자들의 방해가 얼마나 집요했으며, 지속적이었는지를 강조하고 싶어서 마치 괄호 안에 참고 내용처럼 집어넣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 내용은 다음 주에 살펴 볼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내용은 5절에서 24절로 연결하여 보아야 자연스럽게 문맥이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 중에 시작했던 성전 재건 공사는 낙심이 찾아오면서 결국 멈추어졌습니다. 영적 낙심은 결국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일보다는 개인의 안일을 추구하는 것을 더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낙심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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